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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마당

그대에게 가는 먼길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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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63)
2025-01-08 23:23 14 0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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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의

 

3.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유신 독재에 다들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TV에서 반복하는 대통령의 뻔한 시정 연설이 나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채널을 돌려 버렸다. 1979 10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지방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전에 동일 방직 사건이 있었고, 8월에는 YH 무역의 여공들 190여명이 신민 당사로 진입한 사건 등으로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했었다. 그럴 부산에서 대거 학생들이 유신 독재 반대 명분으로 들고 일어난 시위가 이웃 도시 마산으로 번지고 있었다. 10 26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 박정희와 안기부장 김재규 그리고 경호실장 차지철 등이 모인 것은 부산 데모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자기를 따르는 정보부의 핵심 부하들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박정희의 마음을 떠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심한 면책과 새카만 후배인 경호 실장 차지철의 모욕적인 발언뿐이었다. 그는 즉시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했다. 유신의 심장에서 벌어진 핵분열이라 있다. 

 

통상 10.26 사건으로 지칭되던 사건은 사회와 역사를 생각하는 나의 삶의 방식에 변화를 많이 주었다. 시해 사건을 접했을 나는 그래도 한편으로 박정희가 없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유지될 있을까를 걱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그의 배려를 받아 대학을 입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슬픔도 느꼈다. 다음 일찍 조문을 위해 양복을 걸쳐 입고 친구들을 만나던 J 회관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 앞으로 전개될 대한민국호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국장은 며칠 동안 진행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18 박정희 통치를 기억하며 애도했다. 그렇게 국장 일정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유신이 마감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유신 독재도 종말을 ()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정치적 해빙기를 맞으면서 고시 공부해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유신 독재 체제하에서 고시 공부를 없다는 생각과 이제 독재 체제가 끝나가기 때문에 고시 공부해도 된다는 생각이 컸던 것같다. 내가 그해 겨울 근처에 있는 교회의 문을 두드린 것은 신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고시 공부를 위한 다짐의 의미도 컸다. 

 

내가 문을 두드린 교회는 동네 교회지만 근방의 다른 교회들보다는 비교적 컸다. 교회는 P 시장 국회 단지 언덕 위에 위치 해있다. 교회로 올라가는 길은 2가지다. 하나는 내가 사는 뒤쪽으로 골목을 통해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P 시장 정류장에서 국회 단지 쪽으로 올라가는 큰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교회로 가는 길이 나오고, 그쪽으로 100 메타 올라가면 교회가 나온다. 교회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띈다. 왼쪽에는 청년회와 청소년회가 이용하는 회의실 건물이 있다. 교회 마당은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좁은 것도 아니다. 

 

교회의 장점은 무엇보다 청년회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에 있다. 내가 교회를 발로 찾아갔을 때도 여러 청년이 나를 반겨주면서 주일 예배 외에 청년회 모임에도 참석하라고 인도해 주었다. 모임에서 따로 성경 공부를 주로 하고 기타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개발해서 나누기도 했다. 성경에 대해서는 역시 관심이 있어서 나는 등록 즉시 청년회 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참석한 번째 모임인가였다. 성경 공부를 무사히 마친 다음에 공부를 주도하던 이가 기도를 끝으로 마감했다. 다음으로 친교 시간이 이어졌다. 친교부장을 맺고 있는 20 초반의 앳된 여성이 말을 잇는다.

 

, 지금부터 친교의 시간입니다. 각자 자기가 마음에 드는 앞으로 자리를 옮겨 보세요. 오늘은 새로 들어 분도 있으니까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녀는 미리 준비한 초를 각자에게 나눠 준다. 각자 촛불을 켠다. 

 

나는 아직 사람들을 모르는 상태라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랬더니 아까 여성이 앞으로 온다. 

 

각자 눈을 감고 자기 앞에 있는 분을 위해 기도해보세요.” 

 

이것도 나에게는 생소하다. 나는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미정이예요. 교회는 어렸을 적부터 다녀서 알고 있어요. 지금은 청년회 친교부장을 맡고 있어요. 새로 오셔서 반갑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까딱하면서 인사했다. 생각보다 인상이 서글서글해 보인다. 내가 원래 낯선 사람에게는 얼굴을 가리는 편이지만, 호감 가는 상대 여성이 친절을 베푸니까 마음도 열리는 느낌이다. 

 

저는 이시우입니다. 새로 뜻한 바가 있어서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괜찮아요.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서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은 대단한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선교를 해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시우님은 주님이 특별히 은혜를 베푼 같아요.” 

 

처음 청년회 모임에 치고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다.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Y대와 E여대생이 함께 운영하는아가페라는 서클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서클이 이름에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이 나온 경험이 있다. 아마도 속에는 종교적 체험에 대한 근원적 열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실망하곤 하는지 모른다. 이런 열망이 어디서 건지는 모르지만 종교는 이후로도 나의 젊은 시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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