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게...지겨울 때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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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영(78회, 인인(in:人) 마음연구소 소장)
내가 애정하는 “옛사랑”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이다. 이 부분이 나올 때면 가슴 한구석에 휑한 바람이 스치듯 먹먹함이 밀려오곤 한다.
사람이. . . 사랑이. . . 지겨워질 때.
사랑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 중 하나이며,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와 행복을 가져 다 준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사랑이 버거워지거나 지쳐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관계의 문제를 넘어, 심리적 상처와 감정적 번 아웃(burnout)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계에서의 감정적 번아웃은 사랑 자체에 대한 회의와 무기력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결국에는 관계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
번 아웃(burnout)은 주로 직장과 같은 생산적 활동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인간관계, 특히 사랑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관계에서의 번 아웃은 정서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 비인격화(depersonalization), 그리고 개인 성취감 감소(reduced personal accomplishment)로 나타난다. 번 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돌보는 데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없으며, 관계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장기적인 갈등, 소통 부족, 그리고 감정적인 피로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흐(Christina Maslach)의 번 아웃 모델은 주로 직장 환경에서 연구되었지만, 관계에서의 번 아웃을 설명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서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정서적 상처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점차 정서적으로 고갈된다. 이는 사랑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고, 관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이 사랑에 지쳐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과도한 기대이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관계는 현실적이고 상호 존중하는 기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지나친 이상화와 상대방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사람들은 실망과 상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망은 점차 쌓여 번 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관계에서 소통이 부족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적 요구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할 때도 번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적 요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피로를 느끼고, 이는 관계에서의 만족도를 크게 낮추게 된다.
관계의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심리적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하는 것이다. 심리적 복원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관계에서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번 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은 관계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고, 자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점차 회복할 수 있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 연구는 우리가 관계에서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돌봄(self-care)을 실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자기 돌봄은 단순히 신체적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정신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과정이다. 사랑에 지쳤을 때는 잠시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관계를 바라보고, 감정적 여유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관계에서 번 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효과적인 소통과 경계 설정(boundaries)이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의 창시자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는 감정적으로 고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서로의 필요를 존중하는 소통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관계에서 갈등의 핵심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데 있다.
경계 설정은 상대방과 자신의 감정적 요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계가 불명확할 때, 사람들은 서로의 감정적 요구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어 결국 고갈될 수 있다. 따라서 경계를 설정하고,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헐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와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은 두 차례 결혼하고 두 차례 이혼한 유명한 커플로, 이들의 관계는 강렬한 사랑과 동시에 심한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열정적이었지만, 지나친 기대와 상처로 인해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다. 관계적 번 아웃을 경험한 그들은 서로를 떠났지만, 끝내 완전히 잊지 못하고 평생을 사랑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 보냈다. 그들의 일화는 지나치게 강렬한 사랑과 상처가 어떻게 관계의 번 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부부 상담을 통해 만난 한 부부는 결혼 초기 사랑이 충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는 갈등과 상호 기대의 충족 실패로 인해 관계가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각자의 감정적 요구에 지쳤고, 결국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통해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각자의 경계를 설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들은 자신을 돌보고 상대방에게 감정적 여유를 주는 법을 배우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이 부부의 사례는 상처받은 관계도 소통과 자기 돌봄을 통해 다시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사랑에 지쳐버릴 때, 이는 단순한 감정적 변화가 아니라, 심리적 상처와 번 아웃의 결과일 수 있다. 번 아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복원력을 키우고, 자기 돌봄을 실천하며, 경계를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소통과 서로의 감정적 요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사랑에서 오는 번 아웃은 피할 수 없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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