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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포럼

224회-조선건국-이익주(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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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리자
7시간 34분전 12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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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전환기는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사상과 권력 구조의 재편 과정이었다. 474년간 지속된 귀족 중심의 불교 국가 고려는 1392년을 기점으로 사대부 중심의 유교 국가 조선으로 전환되었다. 청자에서 백자로, 불교적 세계관에서 성리학적 질서로의 변화는 사회 구조 전반의 이동을 의미했다.

이색은 이 격변기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한산 출신으로 국자감과 원나라 유학을 거치며 학문과 정치에서 명성을 얻었다. 당대 최고 권력자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고, 과거 장원과 원 제과 합격을 통해 국제적 학문 네트워크 속에서 성장했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기에는 신임을 받으며 성균관 정비와 인재 양성에 참여했고, 성리학적 질서를 통해 국가를 재건하려는 흐름에 동참했다.

그러나 개혁은 순탄하지 않았다. 친원 세력 제거와 토지 제도 개편은 기득권의 저항을 불러왔고, 신돈의 등용과 몰락은 개혁 정치의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공민왕 시해 이후 우왕대에 들어서자 권문세족과 권력 핵심 인물들이 국가를 사유화하며 매관매직과 토지 탈점이 만연했다. 정치적 혼란과 왜구의 침략은 고려 말의 어두운 단면을 형성했다.

이색은 원로 문신으로서 신구 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했으나 점차 보수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전개된 권력 재편 과정에서 그는 창왕 옹립에 동의하며 이성계 세력과 대립했다. 특히 전제 개혁을 둘러싼 논쟁에서 조준과 정도전이 사전 혁파와 재분배를 주장한 데 반해, 기존 관행과 법 질서를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법과 전통을 중시하는 태도는 안정 지향적 보수주의의 면모를 드러냈다.

반면 정도전은 성리학적 민본 사상을 토대로 급진적 개혁을 지향했다.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균관 중심의 유학 질서를 강화했으며, 위화도 회군 이후 신흥사대부의 정치적 설계자로 부상했다. 군주가 민심을 잃으면 교체될 수 있다는 혁명론은 맹자의 논리를 근거로 삼았다. 왕조 교체는 개인의 충절을 넘어 민본을 위한 선택이라는 논리가 형성되었다.

이색은 고려에 대한 충절과 기존 질서의 존속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고, 정도전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학문적 노선보다 시대 인식과 정치적 결단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이색은 유종으로 존경받았으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정도전은 혁명적 설계자로 조선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고려의 마지막 유학자로 남은 이색의 실패는 무능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법과 관행을 지키려는 태도는 혼란 속에서 안정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도였으나, 급변하는 권력 구조 속에서는 정치적 고립을 초래했다. 조선 건국 이후 그는 유배와 이동을 거듭하다 여흥에서 생을 마감했다.

왕조 교체의 본질은 인물의 선악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한 방향성에 있었다. 문과 무의 결합, 이상과 현실의 충돌, 충절과 혁명의 갈림길은 오늘날에도 리더십의 본질을 묻는다. 변화의 시기에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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