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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포럼

[요약] 115회 덕수포럼 - 서애 유성룡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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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2016-07-28 07:51 118 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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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07.23.(). 07:30.09:30.

장소 : 롯데호텔 잠실점 3

연제 : “서애 유성룡의 리더십

강사 : 오원석 성균관대 교수

- 학력 : 성균관대 통계학과 졸업, 미국 국제경영대 대학원 국제경영학석사, 성균관대 대학권 경제학 박사,

- 약력 : 제일은행 명동지점, 태평양화학 무역부 근무 후 미국유학, 동아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무역 상무학회 회장, 성균관대 무역대학원장, 한국무역학회 부회장, 성균관대 경영연구소 소장, 경영학부 학부장

- 저서 : 무역관습론,무역 계약과 결제, 국제비즈니스계약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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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석 교수의 전공은 국제거래이데 20년간 역사공부

 

임진왜란은 6.25사변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국난이며, 국내의 정치, 경제, 국방, 사회 각 부분이 위중한 지금 상황에서 지혜롭게 국난을 극복했던 한 역사적 인물을 보면서 작금의 위기를 헤쳐나 갈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 6.25사변(18%) : 사망자 450만 명 (당시 남북한 인구 2,500만 명)

- 임진왜란(40%) : 사망자 200만 명 (총 인구 500만 명), 포로 20만 명

 

유성룡(15421607) 호 서애(西厓)

- 낙동강물이 돌아간다는 하()()마을에는 서쪽언덕(단층)이라는 서애(西厓)가 있었는데, 한 번도 낙동강물이 범람한 적이 없다. 유성룡은 내가 이 조선의 서쪽 언던이 되겠다. 조선이 이 마을의 언덕처럼 아무런 해도 당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하여 호를 서애라고 지었다.

 

유성룡의 리더십
1. 선공후사(先公後私) : 사사로운 것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

2. 유비무환(有備無患) :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

3. 지인지감(知人之鑑) :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사람을 잘 알아보는 감식력(鑑識力)
4. 개혁사상(改革思想)

- 모든 세금을 쌀로 내는 장미법

- 양민과 노비도 군의 의무를 지게하는 속오군제도

- 이장손을 등용하여 비격진천뢰(폭탄)을 제조한 기술 중심의 개혁안


유성룡의 징비록(국보 132, 정유재란과 임진왜란 7년을 결산한 책)에서의 3가지 한()

1. 내가 일찍이 퇴계 문하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자질을 인정을 받았는데 학자의 길로 가지 않고 정치의 길로 간 것

2. 전란 중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해도, 한 사람이 관직을 독점(25세에 문과 급제해서 55세에 영의정에서 물러남)

3.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성은에 보답하지 못하였다.

 

서애 유성룡이 만난 네 명의 사람을 중심으로

- 충무공 이순신, 퇴계 이황(유성룡의 스승), 선조, 약호 정탁

 

친구이며 국난을 같이 극복했던 이순신 (두 사람의 우정은 살아 50년 죽어 500)

- 이순신은 1545년생으로 유성룡보다 3살이 어리며, 을지로 건청동(현 인현동)에서 태어남

-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인현동을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라 호칭

- 이순신의 집안은 문인가문 (5대조 이변은 세종때 대제학, 3대조 이백록은 연산군의 스승)

-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출사하지 못해 가세가 기울어 외가인 아산으로 이사 (아산 현충사)

- 10대 후반에 다시 인현동으로 이사하여 유성룡과 중부학당에서 동문수학(형처럼 친구처럼)

- 지인지감(사람이 재능을 알아보는 감찰력)이 뛰어난 유성룡이 이순신(당신 22)의 무인 자질을 발견하여 무과를 권유

- 문에서도 뛰어난 이순신이 문과공부를 해서 급제를 하면 가문의 영광이겠지만 무과급제를 하면 조선의 영광이다라는 말에 무과로 바꿈

- 28세 때 무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3년 뒤인 31세 때 무과에 급제.

- 급제 당시 병조판서 김규형이 이순신을 면접후 소실의 딸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제 막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는데 앞으로의 부귀영화를 위해 대감의 선열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니 양심이 부끄럽습니다.“ 하며 거절 (3647세까지 병조판서 김규형의 미움으로 3번의 파직과 2번의 강등을 당함)

- 47세 때 유성룡(당시 좌의정)에 의해 추천(6단계 승진)되어 전라 좌수사로 파견

- 백성들은 하늘이 내린 장수다하며 칭찬을 하여도 이순신은 하늘이 조선을 도운 것이다.’ 라고 할 뿐이며,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군은 자신의 군사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줄 정도로 이순신을 인정

 

조선시대 교육, 사학과 관학

- 사학 : 서원

- 관학( : 초중고에 해당하는 향교로 소과에 합격하면 진사, 생원으로 불리며, 소과에 합격해야 고급학교(성균관)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음.

- 한양의 초급교육기관은 향교가 아닌 4부 학당(동부, 서부, 남부, 중부)

 

스승이며 조선의 성리학 대표자 퇴계 이황

- 유성룡이 20세 때 관악산에서 홀로 수학하다 맹자의 책에서 <천하에 백성이 가장 귀하고 그 다음이 사직이고 군주가 제일 가볍다>라는 민본사상 가짐

- 이황(1501년생)은 유성룡을 보고 너는 여인이 낳은 사람 같지 않고 하늘이 내린 사람 같다고 극찬

- 선조는 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존경심이 우러난다.”

- 백상 이항복은 내가 존경하는 분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오리 이원익이고, 한 분은 서애 유성룡인데, 오리 이원익은 내가 속일 수 있지만 차마 속일 수 없다. 진정성이 얼굴에 비치기 때문에 속일 수 없다. 유성룡은 아무리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 없다. 너무 명철해서 모든 일을 꿰기 때문이다.”

- 유성룡은 인품은 타고난 명석함, 독서량을 통한 해박한 학식, 비상한 기억력. 먼저 말하는 법 없이 남의 말을 듣는 편이고 겸손하고 모든 일에 침착하고 신중하다. 두려움이나 떨림이 없고 진중하고 침착하며 모든 일이 공정하다.’

- 퇴계 이황은 제자 300명 중 재상 9, 장관 40명을 배출하였으나 수제자 서애 유성룡

- 이황 문하 7개월 만에 스승으로부터 조정에 나갈 것을 권유받고 23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2년 만에 문과급제

 

주희 건사록(유학의 입문서) - 유성룡이 퇴계의 문하에서 읽었던 책

- 견이사의(눈앞에 이익이 보이면 그 이익이 의로운지 아닌지를 보라),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앞두고 즐겨 쓰셨던 휘호.

- 무엇이 의인가? 맹자는 의의 본질을 수오지심(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함.

- 똑똑하고 스펙이 좋고 유능하고 총명한 사람들이 인생 중반에 무너지는 이유는 견이사의를 지키지 않아서다.

 

 

일생의 삶을 같이한 국왕 선조 (유성룡보다 11살이 어리며, 16세 왕위에 오름)

- 10대 연산군, 11대 중종, 중종의 첫 왕비 장경황후 아들 12대 인종(후사 없음), 두 번째 왕비 문정왕후 아들 13대 명종(후사 없음), 명종도 후사가 없어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묘지는 동작동 국립묘지) 덕흥군(명종의 배다른 형제)의 아들 화성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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